정직한 실수 - 리처드 로티
<실용주의연구 발제. 리처드 로티, in Philosophy as Cultural Politics 요약. 원문은 http://blog.aladin.co.kr/russell85/6072772>
로티는 '냉전적 자유주의자'라는 개념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이들은 냉전을 지지한 자유주의자들인데, 언듯 보아서는 형용모순이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을 경멸하는 데 이러한 표현이 쓰였다. 이런 칭호를 얻을법한 사람들은 주로 예전에 공산주의 정당에서 활동을 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공산주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스탈린주의에 의해 강요된 가혹한 당파투쟁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런 당파투쟁은 과연 소비에트 연방이 정의를 구현하고 있는가에 관한 사상적, 철학적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이 논쟁의 진영은 크게 양분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공산당적을 유지하고 있는 스탈린주의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공산당을 포기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이다(로티의 부모가 트로츠키주의자였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이들은 서로를 변절자라고 욕했으며, 상대편을 궤멸시키기 위해서 자본주의적 세력(즉 미국 정부)과 결탁하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많은 지식인들에게 냉전적 자유주의자라는 칭호는 여전히 달갑지 않다. 그리고 이런 칭호를 받는 사람이 되고싶어하지 않고, 비평의 과정에서도 위대한 작가들에게 이런 칭호를 붙이지 않는다. 로티는 조지 오웰에 관한 히친스의 비평을 이런 태도의 좋은 사례로 든다. 오웰은 반-공산주의자였다. 그렇다면 오웰은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을 지지했을까? 히친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웰은 반-공산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반-제국주의자였고, 이 둘 사이에서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져야할지 확실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티는 이런 히친스의 확신에 의문을 제기한다. 로티는 오웰이 베트남전을 스탈린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인식했을 가능성 또한 있으며, 만약 그랬다면 오웰은 전-트로츠키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참전을 지지했을 것이라 본다.
로티는 이어서 이런 식으로 소설가를 비평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많다고 지적한다. 즉, 오웰에게 "불편한 사실을 직면하는 힘"이 있었다면, 다른 정치적 입장을 취했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던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로티가 보기에 히친스는 모든 성실하고(honest) 지적인 사람은 미래의 역사가들의 판단과 거의 일치하는 정치적 판단을 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이 성실함은 경험적 사실에 관해 면밀하게 조사하고, 그에 관해 가감없이 솔직하게 표현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단어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사례가 훨씬 많다. 조지 버나드 쇼는 무솔리니의 에티오피아 침공을 묵인했고, 예이츠는 무솔리니를 한 때 존경했다. 사르트르는 한때 공산당원으로서 스탈린주의 비판에 소극적이었으며,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에게 매우 공격적이었다. 그러므로 히친스를 비롯해서 이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 관해 로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이들은 지적으로 불성실(dishonest)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지적으로 불성실한 자들은 사실에 관한 조사가 부족했거나, 또는 알고도 묵인하거나 자신을 기만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로티는 이런 태도가 좌파들의 악명높은 깐깐함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근원을 더 추적해보면 도덕적-정치적 선택에 관한 고전적 관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릇된 도덕적 선택은, 신중한 선택의 결과 고의적으로 선함을 배반하는 것이라는 기독교적 생각과, 선택에 필요한 원리가 모든 합리적 존재에게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플라톤주의적인 생각의 결합에 의해서 '비합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현대의 많은 도덕철학자들 또한 이런 생각을 많이 수용하고 있다. 반면 듀이는 이 둘의 결합을 이루어낸 것이 칸트라고 생각하고, 이는 도덕적-정치적 선택에 관한 잘못된 관점을 심어줄 수 있으므로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도덕성에 관한 헤겔의 생각, 즉 도덕적 원리란 과거에 우리가 해왔던 것의 성긴 요약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의 도덕적-정치적 선택은 신념과 욕망의 연결망을 재조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건이라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결과이다.
듀이의 설명방식에 따라 오웰이 왜 정치적으로 옳았는가에 관해 해명한다면, 그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인 것이다. 만약 이런 관점을 채용해서 오웰의 정치적 적절함의 원인이 성실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의 정치적 부적절함 또한 그 원인이 불성실함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다. 엘리엇은 <동물농장>의 초고를 받고도 출판하기를 거부했지만, 이것이 그가 불성실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이런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전 세대의 정치적 선택에 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던 셈이다. 스탈린주의를 뒤늦게 포기한 사람들은 그렇게 될법한 여러 조건에 놓여있었을 뿐인 것이지, 그들이 신념으로서 지니고 있던 특정한 원리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만약 그 사람들도 더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면, 스탈린주의에 훨씬 더 빨리 환멸을 느끼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이런 문제에 성실함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왜 많은 성실한 사람들은 영국의 공장과 광산을 보면서 사회주의가 더 나은 정치제도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굴락의 존재가 폭로된 것만으로도 소련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사건이 벌어지던 당시에 이들은 전혀 다르게 알려지고 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판단의 문제에 관해서 섣불리 이야기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이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 듀이는 의사결정에 관한 플라톤주의적 모델은 인간의 삶과 맞지 않기 때문에 무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리스적인 '이성'이라는 말을 '지성'이라는 말로 대체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수용한 평론가 가운데 한 사람은 라이오넬 트릴링이다. 트릴링은 인간의 지성이란 인간의 삶의 어려움과 복잡함을 마주하고 대처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인간 이해를 비평에 적용했는데, 그 결과는 인간사에서 이런 대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장르가 소설이라는 생각으로 나타났다. 소설은 판단의 합리적 근거가 아니라 그런 판단을 내리게 된 이야기(서사)를 알려준다. 이 견해에 따라서 성실한 사람이라는 개념을 다시 해석하면, 그는 다양한 서사를 가지고 그것이 어떤 도덕적-정치적 판단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된다. 또한 그 이야기들은 완벽하게 구성된 이야기가 아니고 엉성하게 이어지고 있을 가능성도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의 소설 <여행의 중간>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이른바 '냉전적 자유주의자'라고 불릴만한 사람인 챔버스를 모델로 삼아 만들어졌다. 챔버스는 히스가 간첩활동을 하고 있다고 폭로한 최초의 사람이고, 처음엔 공산당에서 활동했으나 이후 반-공산주의자가 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는데, 로티에 따르면 그 이유는 단지 챔버스와 히스 사이의 다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가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챔버스는 당시 좌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다른 많은 저널리스트, 평론가들과 달리 <타임> 지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반-공산주의적 성향의 기사를 보도하는 데 열심이었다. 이런 그의 성향은 보수적 성향의 발행인인 루스조차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성향이었다. 루스를 비롯한 많은 출판인들, 그리고 미국의 많은 지식인들 사이에는 2차 대전 당시에 미국과 소련이 협력했던 것처럼 종전 이후에도 두 국가가 협력하는 세계가 되길 바라고, 스탈린이 정말 나쁜 놈인지에 관해서 아무도 섣불리 그렇다고 판단을 내리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결국 챔버스의 편집 성향과 논고들은 심각한 반대 이외의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좌파적 지식인들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공산주의를 뉴딜 정책을 반대하는 구실로 이용했던 과거를 상기하면서, 같은 역사가 또 다시 반복될 것을 걱정했다. 챔버스는 이런 분위기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으며,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타임> 지를 비롯한 루스의 다른 잡지들의 성향이 자신과 거의 일치하는 방향으로 점차 바뀌어갔기 때문이다. 그는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이겼다."
그러나 챔버스는 히스와의 그 유명한 다툼으로 인해서 1948년 이후에야 그 이름이 알려졌다. 히스가 완전히 탄로난 뒤에 트릴링의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트릴링이 마치 챔버스를 모델로 막심을 묘사한 것처럼 낸시 크룸과 아서 크룸은 히스를 모델로 만들었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미뤄볼 때 트릴링은 이 소설을 쓰던 당시 히스에 관해 모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히스 부부와 크룸 부부의 이 평행은 우연이지만 놀랍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 관한 광고를 보면 챔버스(와 막심)는 변절자로 묘사되며, 돈 또는 명예라는 이익을 위해 당을 배신했고 그러므로 그는 불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여러 표현들로 꾸며진다. 그러나 트릴링은 히스의 대변인에게 챔버스에 관해 "명예로운 사람"이라는 답변을 남겼다. 그 대변인은 이것을 풍자의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로티는 이것이 진지한 답변이라고 해석한다. 그 까닭은 트릴링은 그 책의 새로운 판본에 붙인 서문에서 챔버스는 그의 조국을 배반하는 간첩활동에 참여한 전력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명예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적었기 때문이다. 로티는 이 문구를 도덕적-정치적 실수가 불성실함이나 멍청함 같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이런 단어들은 도덕적-정치적 선택에 관해 기술하는 데 매우 조잡하다는 생각을 트릴링이 표현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그리고 이런 선택과 실수는 소설을 통해서 가장 잘 배울 수 있다고도 덧붙인다.
트릴링 주변의 많은 인물들이 챔버스에 관해 그가 그런 식으로 묘사하는 것을 마뜩찮게 생각했다. 심지어 부인인 다이애나 트릴링도 그랬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트릴링의 답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비평가 포스터는 조국과 친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조국을 배신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은 현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다. 이런 식으로 원리를 세워놓고 그 원리에 자신의 판단을 호소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복잡한 것 속에서 온전히 살아남기를 싫어하는 책임회피의 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남는 것이 바로 듀이가 말한 지성이 활동하는 영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의 중간>은 듀이적 삶의 방식을 표현하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라스켈은 막심과 크룸 부부 양쪽 모두와 자신을 차별화하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이러한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크룸 부부는 스탈린주의를 굳게 믿는 사람이고, 막심은 이들이 반드시 파멸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공산주의적 활동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라스켈은 자신이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했지만, 누군가가 당을 떠난다고 할 때 불쾌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미국공산당과 모스크바의 관계에 관한 보수 언론들의 보도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심의 배신은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도록 라스켈을 몰아붙였다. 그는 누가 옳은 것인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위치에 있다. 독자들은 라스켈이 트릴링이 걸어간 길을 걸어갈 것 같은 캐릭터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를테면 왈라스 대신 트루먼에게 투표하고, 챔버스의 편에 서서 냉전적 자유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반면 크룸 부부는 스탈린주의에 관해 의심하지 않고, 이런 의심을 일종의 정신적 무질서라고 생각했다. 이런 막심과 크룸 부부를 동시에 바라보는 라스켈은 "크룸 부부에게 배운 것 때문에 막심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는 일견 모순적인 말을 내뱉게 된다. 막심은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라스켈에게 설명하며 라스켈 식의 지혜는 이 시대에 필요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승리를 거두는 것은 자신이나 크룸 부부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국면에서 라스켈은 막심과 크룸 부부 사이에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트릴링은 이런 공통점이 분명히 드러나도록 이 소설을 썼다. 막심의 오만함과 크룸 부부의 깐깐함은 듀이적인 의미의 "인간적인 비판적 지성"의 부족이 드러나는 두 가지 방식인 것이다.
막심은 챔버스와 마찬가지로 어떤 절대적이고 보상을 주는 것에 기대어 영웅적이고 단독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삶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챔버스는 동료들의 압력을 어떻게 견뎠는가라는 질문에 "어떤 힘이 내 옆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크룸 부부는 이에 필적하는 완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스탈린의 악행에 관해 이야기할 때 히스의 부인 프리실라가 그에게 '정신적 자위'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 데서 드러난다. 막심은 마치 키에르케고르처럼, 확실성은 불가능하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이기에 성취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절대적인 합의는 논쟁에서 이기는 능력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크룸 부부와 히스 부부는 키에르케고르가 "기독교계"라고 부른 사람들의 특징을 그대로 물려받았기에, 구원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었고, 모든 성실한 사람이 자신들과 같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구원으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과 대화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반면 라스켈과 같이 "인간적인 비판적 지성"을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무조건적, 자기충족적 계율과 같은 원리에 저항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이에 비추어볼 때, 막심과 크룸 부부는 다 이런 종류의 생각에 자신의 도덕적-정치적 결정을 의존하는 인물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행의 중간>은 우유부단하고 무기력한 쁘티-부르주아적 정서라는 공세에 대해 트릴링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쓴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라스켈을 통해서 드러나며,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왜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지를 우리는 알아차릴 수 있다.
만약 그의 소설을 이런 식으로 읽는 것이 옳다면, 트릴링은 막심-챔버스 뿐 아니라, 크룸-히스 부부 또한 명예로운 사람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챔버스와 히스 모두에게 비열한 동기는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이 가져다주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것은 챔버스가 공산주의자 그룹을 폭로한 이유이기도 하고 히스가 죽기 전부터 45년 동안이나 자신은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간첩활동도 하지 않았고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였다는 거짓말을 반복한 이유이기도 하다. 알프레드 케이진은 "앨저 히스는 왜 고백할 수 없었나" 라는 글에서, 히스가 열정적인 애국자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적고 있다. 뉴딜 정책을 입안한 것과 소비에트 정보국의 스파이가 된 것은 둘 다 그의 조국애로부터 나온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케이진은 "히스는 자신이 우리보다 더 좋은 미국인이었다는 것을 확신하며 죽을 것"이라고 보았다. 다양한 시간에서 두 사람은 간첩이고 위증자였지만, 그들은 그럴듯한 이유에서 이런 행위를 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이해한 만큼 인간성을 위해서 헌신했지만, 그것은 이후의 역사가들이 그 행위의 결과에 따라 어떻게 그들에 관해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 관련이 없었다. 반면 소설가는 행위의 동기와 행위의 결과 모두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도덕적-정치적 선택에 관한 기독교적이고 칸트적인 생각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덧붙여, 트릴링이 이런 듀이적인 생각을 언제나 확고하게 지지한 것은 아니다. 오웰에 대한 그의 태도는 히친스와 흡사하다. 그는 오웰의 독특함은 머리를 굴리지 않는 것, 즉 간단하고 직접적이고 기만하지 않는 지성만으로 세계와 대면하는 덕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구절은 우리에게 마치 험프리 보가트가 되고 싶어하는 우디 알렌, 헤밍웨이는 우리 시대에 그가 유일하게 질투하는 작가라고 말하는 트릴링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트릴링이 단지 오웰을 비평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로티는 오웰이 듀이적인 관점에서도 좋은 작가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는 독특하게 단순하고 진실하게끔 보이는 작품을 만드는 데 매우 공을 들였다. 헤밍웨이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그런 단순함과 건실함들을 차분히 모았다. 물론 이 작가들이 트릴링과 히친스가 보인 것과 같은 반응을 바란 것은 사실이나, 이들이 이런 작업을 할 때는 어떤 거부감을 일으킬만한 것도, 어떤 위선적인 것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이런 시도들은 당신에게 없는 덕목을 있는 척 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덕있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행위들을 수행하며 자신이 점차 덕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문제라는 것이다. 한쪽 편에서는 이런 시도에 대해, 직접적이고 명증한 선함과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면 단지 위선적이라고만 말할 뿐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나 듀이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런 직접적인 관계가 가능하다는 환상은 오웰에 관한 트릴링의 글의 제목인 "진리의 정치학"에서 암시된다. 정치적인 실수를 피하는 방법은 성실하게 진실들을 모으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과학이 없는 것처럼 진리의 정치학 또한 있을 수 없다. 갈릴레오는 지적인 옳음이라는 칼로 미신과 편견을 쳐낸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될 결과를 산출하는 현명하고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갈릴레오는 근대의 영웅이 되었다. 오웰도 마찬가지로 20세기의 영웅이 되었다. 시대의 편견에 저항하는 이런 영웅들을 존경하는 것은 완전히 적절하며, 필수적이다. 만약 이런 존경이 없다면 도덕적 이상주의도, 도덕적 진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버나드 윌리엄스가 "도덕적 운"에서 쓴 내용을 잊어서는 안된다. 고갱은 이런 영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취급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가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진부하기 짝이 없었다면, 고갱은 아마 수십년 동안 불쌍한 캔버스나 만들어내고 자신이 회화의 역사로부터 저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신념을 굳게 지키는, 앨저 히스같은 종류의 화가가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갈릴레오는 그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옳다고 논증하기 위해 노력한 라이프니츠의 용감하고 공상적인 현대적 버전 정도 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부적절한 사례들이다. 정치학의 역사는, 과학의 역사처럼 사물들이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게 되는지에 관한 관점에서 쓰여진다.
영웅숭배가 도덕적 진보를 위해 필수적이라고만 한다면, 이것은 혐오스럽다. 그러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어떤 사람이 성실하게 하더라도, 어떤 한 사람에 의해 혐오를 받을 수 있다.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노예제를 유지하려고 싸우는 리 장군의 결정에 의해 혐오받았지만, 그렇다고 리 장군이 명예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도 나치의 아이히만이나 소련의 수슬로프와 식사를 같이 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삶의 서사가 오웰과 트릴링 그리고 우리가 각자의 삶에 관해서 하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일관성을 가진다는 사실은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성실함과 명예로움은 이런 이야기의 일관성의 정도에 달려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의 삶을 선한 것으로 드러나게끔 자신의 삶에 관한 소설을 구성할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어떤 사람도 의식적으로 악하지는 않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진짜 의미하는 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독교적이고 칸트적인 생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 대부분이 자기기만이나 불성실함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일관성 이외의 어떤 다른 것을 필요로 하게 되고, 결국 모든 인간에게 명료하게 보이고 우리의 삶을 인도해주는 별과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플라톤은 그르고, 별과 같은 것은 없다. 우리가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은 엉성한대로 일관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찰지게(긴밀하게) 만드는 것이 후세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있다.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거부한 사람들은 나쁜 것 같고,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착한 것 같다. 그렇지만 이들을 인도해주는 별 같은 것은 없었다. 이런 생각은 역사의 심판이라는 것도 완전히 그를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우리의 후손에게도 별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적 판단을 하길 멈춰야 한다거나, 또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나치가 승리하고 그들이 역사를 쓰더라도 히틀러 암살 계획에 참여한 사람들은 옳다고 말할 수 있으며, 만약 우리의 아이들이 라스켈보다는 막심이나 크룸과 더 비슷해지려고 하면 아이들을 꾸짖어야 한다.